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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양주’ 근절한 주역…위스키업계 대부가 되다[이코노 인터뷰]

김일주 드링크인터내셔널 회장
40년 주류업계 일하며 ‘국산 위스키 3대장’ 키워
‘골든블랑’ 히트…국산 샴페인 시대 열고 새로운 도전

김일주 드링크인터내셔널 대표이사, 회장이 회사 입구에 있는 회사 로고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 신인섭 기자]
[이코노미스트 김정훈 기자] ‘윈저’·‘임페리얼’·‘골든블루’. 이 위스키들은 ‘국산 위스키 3대장’으로 불린다. 위스키를 좀 먹어봤던 사람이라면 이 이름들이 매우 익숙하다. 2014년 이전만 해도 국산 위스키 3대장은 윈저와 임페리얼 그리고 롯데칠성에서 개발한 블렌디드 위스키 ‘스카치 블루’였다. 하지만 2009년 국내 최초로 출시된 저도 위스키 ‘골든블루’는 부드러운 맛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스카치블루를 밀어내고 3대장 자리를 차지했다. 이후 위스키 3대장은 ‘국산 위스키의 자존심’으로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그리고 이 3대 위스키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무려 40년간 국내 주류업계에서 여러 족적을 남긴 김일주 드링크인터내셔널 대표이사 회장이다. 

김일주 회장은 1996년 ‘윈저’ 개발을 주도했고 2001년에는 국내 최초 ‘위조방지 캡’을 적용한 ‘임페리얼 키퍼’(Keeper)를 출시해 ‘100만 상자 이상 판매’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현재는 임페리얼의 독점 판매권을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국산 위스키 3대장을 자신의 손으로 모두 성공시킨 셈이다. 

그는 1983년 주류업계에 입문한 뒤 두산씨그램, 진로발렌타인스 등에서 마케팅 업무를 했고 2011년 골든블루 대표이사, 2013년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의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특히 윌리엄그랜트앤선즈코리아 대표 시절 국내에 생소했던 싱글몰트 위스키를 적극적으로 알리며 현재의 인기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후 2019년 직접 드링크인터내셔널을 설립해 한국인 최초로 샴페인 면허를 획득하고 국산 샴페인 ‘골든블랑’을 출시해 히트시키는 등 위스키에 이어 샴페인 시장 개척에도 성공했다. 명실상부 국내 주류업계의 대부가 된 김 회장이지만 여전히 그는 ‘새로운 일’이 고프다. 그의 넥스트 스텝은 무엇일까. 

Q.주류업계에 입문한 지 올해로 40년이 됐다. 

-1983년 한 주류회사의 영업사원으로 처음 입사해 한 우물을 파다 보니 어느새 4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국제금융위기(IMF)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위스키 업계에 위기도 많이 있었고, 좀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워낙 현실에 안주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계속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성격 탓에 쉼 없이 여기까지 달려오게 됐다. 

Q.40년간 이 업계에서 살아남은 원동력이 있다면.

-제 전문 분야는 사실 영업 마케팅이다. 마케터가 갖춰야 될 기본 조건은 분석력과 기획력, 그리고 여기에 순발력과 창조성이다. 저는 이런 것들을 본능적으로 좀 타고난 편이었던 것 같다. 늘 아이디어를 내는 것을 좋아했고 안주하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 저의 성과를 이야기 할 때 ‘키퍼 개발’과 ‘저도 위스키 출시’가 빠지지 않는 편이지만 사실 이것 말고도 정말 많은 아이디어를 냈고 성공시켰다. 
김일주 드링크인터내셔널 대표이사, 회장이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 신인섭 기자]

Q.국산 위스키 시장을 조명할 때 2001년 위조방지 캡이 적용된 ‘임페리얼 키퍼’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데.

-임페리얼이 국내 시장에서 ‘윈저’와 ‘딤플’에 이어 3위를 기록할 때다. 당시 유흥업소에서 하도 가짜 양주를 많이 팔다보니 고객들 불만이 많았다. 술집만 다녀오면 다음 날 머리가 깨질 정도로 아픈 거다. 술을 많이 먹은 것도 이유겠지만 대부분 업소에서 여러 가짜 양주를 섞어 팔다보니 문제가 됐다. 그래서 위조방지 캡을 씌운 양주를 개발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임페리얼 키퍼다. 

위조방지캡을 씌운 임페리얼 키퍼.[사진 드링크인터내셔널]

Q.당시 임페리얼 키퍼의 반응은 어땠나.

-2001년 진로발렌타인스에 근무할 당시 데이비드 루카스 사장(현 드링크인터내셔널 고문)과 제가(당시 부사장) 임페리얼 키퍼를 함께 만들었다. 하지만 루카스 사장은 이 제품 출시에 긍정적인 편은 아니었다. 저는 이 제품이 무조건 히트칠 것으로 확신했다. 그리고 2001년 9월 초 임페리얼 키퍼가 출시됐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판매량이 오를 기미가 안 보였다. 오히려 10월과 11월에는 매출이 더 감소했다. 루카스 사장은 내 방에 와서 ‘어떻게 된 거냐’고 걱정하기 시작했다. 나는 “걱정 마라. 이 제품이 이 시장의 마케팅 패러다임을 바꾼다”고 앞에서 큰소리를 쳤지만 집에 와서는 손을 벌벌 떨며 잠을 제대로 못 잤다.(웃음) 그러다 12월 1일이 됐는데 갑자기 임페리얼 키퍼의 판매량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매일 1만개 이상이 팔렸고 전국에서 주문량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때 루카스 사장이 제 방에 들어와 기쁨의 춤을 추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웃음)

Q.왜 3개월 후부터 반응이 온 걸까.

-출시 초기에 고객들 불만이 많았다고 들었다. 유흥주점에서는 술을 ‘콸콸콸’ 따라서 ‘부어라 마셔라’ 해야 하는데, 위조방지 키퍼가 장착돼 있어 술이 ‘졸졸졸’ 나오는 거다. 업소 입장에서는 양주를 많이 팔아야 하는데 술이 천천히 나오면 많이 팔 수가 없어 불만이지 않겠나.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고객들이 가짜 양주 우려를 없앤 안전한 키퍼 제품을 선호하기 시작했고 판매량이 늘어났다. 또 기존 재고분이 소진되는 시간이 약 3개월 정도 걸리다보니 12월부터 반응이 온 것 같다.

Q.저도 위스키(36.5도) ‘골든블루’ 출시도 국내 위스키 시장에서 매우 놀라운 일이었다. 당시 기본 40도인 위스키 도수를 무려 3.5도나 줄였는데. 

-당시에는 ‘미쳤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위스키는 대부분 얼음 잔에 희석해 마시는데 이때 도수가 떨어진다. 어차피 얼음 잔에다 먹으면 도수가 떨어질 텐데 왜 처음부터 도수를 낮추냐는 비판이다. ‘위스키는 도수가 높아야 한다’는 것이 일반화 됐던 시절이다. 저는 40도 일변도인 위스키 시장의 벽을 깨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큰 도전이긴 했다. 

Q.저도 위스키가 국내에서 통할 것이라고 생각한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 10명 중 7~8명은 부드러운 위스키를 선호한다. 위스키 맛을 부드럽게 하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연산이 오래된 위스키를 팔거나 두 번째는 도수를 낮추는 식이다. 12년산보다 21년산이, 21년산보다 30년산의 맛이 더 부드러울 수밖에 없다. 문제는 가격이다. 오래 숙성시킨 위스키일수록 가격이 뛴다. 가격이 비싸면 히트시키기 어렵다. 그래서 도수를 낮추는 방법을 택했다. 그래서 부드러운 맛과 가격 모두를 잡은 히트 위스키가 됐다. 

위스키 시장의 위기 그리고 ‘골든블랑’의 탄생

최근 국내 위스키 시장은 ‘하이볼’(위스키+탄산수)의 인기와 함께 다양한 위스키 제품이 수입되며 활성화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유흥업소를 중심으로 성장한 국산 위스키들은 위기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청탁금지법(김영란법)과 코로나19 등으로 유흥업소를 찾는 고객이 점차 줄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국산 위스키들의 판매량도 급감했다. 

그래서 김 회장은 회사의 다음 주종으로 샴페인을 선택했다. 직접 샴페인 면허를 취득해 국내 최초로 샴페인을 내놨고 그렇게 개발된 ‘골든블랑’은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해외 반응도 좋다. 지난 5월에는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주류 박람회 ‘비넥스포 홍콩’에서 한국 회사로는 처음으로 샴페인 섹션에 부스를 오픈하기도 했다. 한국산 샴페인의 가치를 인정받은 쾌거다. 특히 골든블랑은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LG트윈스의 우승 축하주로 더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김일주 드링크인터내셔널 대표이사, 회장이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사진 신인섭 기자]
김일주 드링크인터내셔널 대표이사, 회장의 집무실에 있는 여러 주류 모습들. 황금빛 색깔의 병이 국산 샴페인 골든블랑이다.[사진 신인섭 기자]

Q.국산 위스키 시장이 위기다.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이전에도 위스키 시장은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 2차, 3차 술자리 자체가 줄다보니 위스키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위스키업계는 위스키를 식사와 곁들이는 주류로 인식시키려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저도 국내 시장에서 위스키가 살아남으려면 1차 식사 자리에서부터 음용할 수 있는 주종이 돼야 한다고 본다. 다만 궁극적으로 위스키업체들이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결국엔 새로운 주종을 선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저희가 2021년 내놓은 제품이 바로 자체 개발한 샴페인 골든블랑이다. 

Q.왜 샴페인을 선택했나. 

-외국 고급 식당 앞에는 반드시 샴페인 바가 있다. 사람들은 식당에 가기 전에 꼭 샴페인 바를 들러 20~30분 수다를 떨며 샴페인을 식전주로 들이키곤 한다. 그들에게 샴페인은 일상이다. 우리도 이런 문화가 들어와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 시작점이 샴페인 개발이었다.

Q.프로야구단 LG트윈스의 우승 파티 샴페인이 됐는데.

-저희 회사 기획팀장이 성남고를 나왔는데 동문이 LG프로야구단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마침 LG트윈스가 정규리그에서 1위를 했고 한국시리즈에도 진출해 29년 만에 우승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저희 측이 먼저 ‘샴페인 샤워’를 제안했다. 보통 외국 프로스포츠에서는 우승을 하면 선수들이 축하주로 샴페인을 가져와 ‘샴페인 샤워’를 하는데 국내에서는 ‘맥주 샤워’를 하는 편이다. 이왕이면 맥주보다 샴페인으로 우승을 기념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고 LG트윈스 측이 수락했다. 당시에 골든블랑 200병 정도를 우승 기념식 테이블에 깔아놨는데 이게 다 언론 보도가 됐다. 그랬더니 다른 구단에서도 “올해 우리가 우승하면 샴페인 지원이 가능하냐”고 연락이 왔다.(웃음) 
29년만에 우승한 LG 트윈스 프로야구단 기념행사용 골든블랑 샴페인 특별에디션(오른쪽)과 나이트 클럽용 골든블랑 샴페인. [사진 신인섭 기자]

경영자 김일주, 그는 실패에서 배웠다

김 회장은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런 만큼 실패도 많다. 그래서 그는 실패에서 늘 배워왔다. 그가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가치도 ‘실패에서 배워라’다. 

Q.경영자 입장에서 실패를 관대하게 바라보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실패를 용납하지 않으면 절대로 직원들이 먼저 움직이지 않더라. 제가 실패한 걸 지적하면 다음부터는 가만히 제 눈만 쳐다본다. 그러고는 ‘방향을 잡아주셔야죠’, ‘말씀을 해주셨어야죠’ 등의 변명만 늘어놓는다. 요즘은 실패를 한 직원에게 ‘잘했다. 이번 일을 통해 어떤 것을 배웠나’라고 물어본다. 왜냐하면 실패는 항상 큰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다. 

Q.회사에 예전에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는 성향이 다른 MZ세대 직원도 많지 않나.

-저처럼 ‘열심히 일해라’ 이러면 꼰대가 되는 거다.(웃음) 늘 강조하는 것이 ‘본인이 행복하게 일했으면 좋겠다’다. 신입사원들 면접 볼 때 저는 다른 얘기 안 한다. 특히 열심히 하라는 얘기는 더더욱 안 한다. ‘당신이 우리 회사에서 1시간이든, 1년이든, 나하고 일할 때는 항상 행복하게 일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MZ세대를 지켜보면 특별히 ‘일해라 마라’ 할 필요가 없다. 제 눈에는 자기들이 알아서 잘한다. 어려워하는 부분이 있으면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회사가 도와주면 된다. 그렇게 소통하면 되지 않나.

Q.업계를 떠나 성공한 경영자로서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노페인, 노게인(No Pain, No Gain)이다. 수고 없는 선한 대가는 없다. ‘왜 나는 늘 불행한데 저 사람은 행복한 것 같지?’라는 생각이 가장 불필요하다고 본다. 뭔가를 바라기 전에 내가 이것을 얻기 위해 어느 정도 노력을 했는지 먼저 돌아봤으면 좋겠다. 열심히 살다보면 어느새 내가 원하는 지점에 도달해 있을 것이라고 꼭 얘기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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