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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어때서" …고령화, 실버 산업 기회로 봐야 [이코노 인터뷰]

[전문가 3인에게 듣는 저출산·고령화 해법]①에스코 아호 핀란드 전 총리
"65세 정년, 숫자에 불과"
정년 연장·일하는 노인·덜 돌보는 케어 시스템 중요

에스코 아호(Esko Aho) 전 핀란드 총리.[사진 신인섭 기자]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한 세대가 채 바뀌기 전에 사회가 변하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시가 발표한 ‘인구정책 기본계획’을 보면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20.9%)로 진입할 전망이란 내용이 담겼다. 서울시가 ‘초고령사회’ 초읽기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초고령사회란 노인 인구 비율이 전체 20%를 웃도는 사회를 말한다. 노인 비중이 7%를 웃도는 고령화사회(2005년)에서 초고령사회로 변화하는 것은 21년 만이다. 고령화사회의 이면에는 ‘저출산’ 문제도 함께한다. 지난해 서울시 기준 합계 출산율은 0.55명으로 세계 최하위 수준을 기록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에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까. 지난 19일 이데일리 전략포럼 기조연설자로 한국을 방문한 에스코 아호(Esko Aho)전 핀란드 총리를 만났다.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아호 전 총리는 저출산‧고령화 문제 해결책을 묻는 말에 이렇게 말했다. “정부, 기업, 사회단체가 더욱 유연한 시스템, 개인화된 운영 방법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기본”이라고도 했다. 여러 질문을 던졌지만, 구체적인 해결책보다는 두루뭉술한 답변이 돌아왔다. 그는 전 세계가 저출산‧고령화를 마주하고 있다면서도 이를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보지는 않는 듯했다. 오히려 새로운 기회라고 생각했다.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세밀한 해결책보다 산업의 발달과 연계할 수 있는 방향을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인 것 같았다.

그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이 세대가 성장하는 시장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기업이 전략을 가지고 이 세대에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노인들이 차지하는 시장의 잠재 성장률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예를 들어 기업이 마케팅할 때 ‘MG 세대’처럼 특정 세대나 계층이라는 타깃을 정한다. 그렇다면 65세 이상 ‘시니어마켓’을 타깃으로 삼아 비즈니스를 고려하는 게 기업의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게 아호 전 총리의 설명이다.

자기 부친을 언급하기도 했다. 수년 전 세상을 떠났다는 그의 부친은 아흔이 넘은 나이에 종이신문 대신 아이패드로 뉴스를 읽었다고 했다. 아이패드가 노인들을 위해 디자인한 제품이 아니었음에도 사용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호 전 총리는 “그런 특정한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에스코 아호(Esko Aho) 전 핀란드 총리.[사진 신인섭 기자]

손에 꼽는 실버산업(Silver industry)으로는 헬스 케어(Health care)가 있다. 네덜란드 대표 헬스 기업인 뷔르트조르흐(Buurtzorg)의 사업은 단골로 언급된다. 네덜란드어로 ‘이웃 돌봄’이라는 뜻을 가진 이 기업은 홈 케어 서비스를 제공한다. 1대 1 돌봄이나 요양원‧요양병원 등 한 곳에 노인들을 모아놓고 돌보는 시스템이 아니라 집마다 찾아가는 서비스를 한다. 각 지역에 10~12명의 간호 인력이 50~60명을 맡아 돌보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덜 돌보는 게 더 좋은 돌봄”이라고 아호 전 총리는 말한다. 도움이 필요한 노인을 외면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노인에게는 더 많은 자율성을 보장하고 각각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돌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미디어도 중요한 산업이 될 수 있다. 오늘날 미디어 서비스가 주목하고 있는 연령대는 20~50세 사이 구매력이 가장 크고 적극적인 세대다. 하지만 미디어 소비자들이 관심사가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버 세대는 중요한 비즈니스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호 전 총리는 “미디어를 뉴스에 한정하지 말고 모든 문화 서비스로 확장해서 봐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핀란드에서도 노인을 위한 전용 미디어 서비스는 없다”며 “30여 개 채널이 모두 같은 (시청자를 대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의료 시스템도 혁신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진료와 처방 치료가 중요한 의료분야에서 특히 예방이 중요한데, AI의 발달은 개인화된 전용 서비스와 예방 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길을 열 것이라고 설명한다. 환자가 스스로 아프다고 느끼기 전에 예방을 통해 진료나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AI를 통한 예방 의료 시스템의 발전을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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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고령화 사회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젊은이의 노인 부양이라는 과제는 필연이다. 청년의 수가 감소할수록 그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비용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그는 정년 연장(Retirement extension), 일하는 노인(Active senior), 더 적은 돌봄(Less care)을 언급했다. 아호 전 총리는 “과거 핀란드에도 사람들에게 언제 퇴직할 것인지 물으면 ‘63~65세 정도’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시대가 바뀌었고 건강과 능력이 허락한다면 더 일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 늘었다는 설명이다. 65세라는 나이는 산술적인 수치라고도 했다.

그는 핀란드에서는 은퇴한 사람들에게 ‘직장 생활로 돌아가라’는 요구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은퇴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더 많이 일하는 사람을 볼 수 있다고도 했다. 회사가 보장하는 정년 연장이 아니라 노동자가 진짜 노동을 그만두는 실질적인 정년 연장이 하나의 추세가 됐다는 설명이다. 이런 변화는 한국에도 매우 빠르게 다가오고 또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아호 전 총리는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이후의 직장생활을 생각해 보자. 과거 재택근무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현실이 됐다” 그는 “때로는 집에서 일할 때 생산성이 훨씬 더 높다”며 “우리가 유연성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다만 이런 변화는 정치인, 즉 의사 결정자들이 더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고 했다. 아호 전 총리는 아이스하키 선수가 언급했던 ‘좋은 선수와 스타 선수의 차이’를 이야기했다. “좋은 선수란 공이 있는 곳으로 잘 달려가는 선수지만, 스타 선수는 공이 갈 곳을 예측해 달려가는 선수”라는 것이다. 의사 결정자들이 노인들의 실질적인 퇴직 시기를 늦추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는 “(제조업 등에선) 노인이 젊은이보다 효율이 떨어지는 측면도 있지만 그들의 경험을 잘 살린 보직에선 업무 효율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연구도 있다”며 “이들의 역할을 독려하면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이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 정부가 기업을 옥죄거나 강제로 정년을 늘리도록 하는 등의 조처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하토야마 뉴타운 타운센타에서 소일하는 노인과 거리의 노인과 주민들.[사진 신인섭 기자]

日, 노인 나이 기준 상향 논의 

실제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고령자(노인)의 나이 기준을 65세에서 70세로 올리자는 제안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열린 경제재정자문회의에서 노동 참가 확대 및 저출산 대응 등에 대한 논의 진행 중 “고령자의 건강수명이 연장되는 가운데 고령자의 정의를 현행 65세에서 70세로 5세 연장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도쿠라 마사카즈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장과 니나미 다케시 경제동우회 대표 간사 등은 “누구나 활약할 수 있는 복지 높은 사회의 실현을 목표로 새로운 레이와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정책 패키지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노인의 나이 기준을 높이는 것은 연금 고갈 문제를 해결하려는 차원에서도 이해된다. 유우키 야스히로 슈쿠토쿠대학 교수도 “고령자 기준 변경은 사회보장비 절감을 위한 분위기 조성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2070년,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약 40%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초초고령사회’를 맞이하는 일본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핀란드 역시 고령화에 대한 고민과 사회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아호 전 총리는 재임 시절인(1991~1995년) 기업이 전액 부담해 오던 근로자의 연금 비용을 기업과 근로자가 반반씩 부담하는 방식으로 개편했다. 국가 차원에서는 세계 최초로 일정 금액의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실험을 시작한 대표적 복지국가가 이미 1990년대에 개인의 노동과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변화에 앞장선 것이다.

그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은퇴할 것이고 연금 시스템에 대한 자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고려했다”며 “자금 지원 시스템은 미래 수요를 고려한 통계에 따라 조정했다. 우리는 진보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에스코 아호 전 핀란드 총리 [사진 신인섭 기자]

에스코 아호 전 총리는_1991년 36세에 유럽 최연소 총리를 역임했다. 2003년 정계 은퇴 후 핀란드 혁신기금 회장·노키아 부사장 등 경영계에서 활동했다. 현재는 본인이 회장을 지냈던 핀란드산업협회에서 중국사무소 이사회 의장을 맡고있다. JP모건 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세계 유수 기업에 대한 자문 활동과 저작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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