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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열풍에 응답한 애플 [한세희 테크&라이프]

챗GPT 등장 후 잠잠했던 애플, 자동차 개발 접고 AI ‘집중’
개발자회의서 AI 방향성 공개…“혁신? 용두사미? 지켜봐야”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6월 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파크 본사에서 연례 세계개발자회의에 참석해 팔을 들어 보이고 있다. 애플은 이날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을 구동하는 자사 기기 운영체제(OS)에 인공지능(AI) 기능을 본격 도입한다고 밝혔다. [사진 AFP/연합뉴스]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챗GPT 출시와 함께 온 세상이 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에 휘말리면서 시가총액 세계 1위 회사던 애플은 갑자기 시대에 뒤처진 기업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오픈AI 같은 AI 분야 스타트업이 주목받고, 마이크로소프트·구글·메타 등 빅테크가 앞다퉈 생성형 AI 기반 기술과 서비스를 선보였다. 숱한 기업이 새로운 AI 시대의 비전을 제시하려 애쓰는 동안 애플은 잠잠했다. PC를 넘어선 스마트폰 시대를 열며 테크 세계의 지배자가 된 애플이 AI 시대로 변화하는 새 흐름은 놓친 것이었을까?

애플도 나름 AI를 연구해 왔지만, 일찍이 딥마인드나 오픈AI 같은 회사에 투자하고 내부적으로도 많은 자원을 쏟아부은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애플이 2011년 선보인 AI 음성 인식 비서 서비스 ‘시리’는 AI를 개인용 기기에 접목한 선도적 시도였지만, 1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지금 시리가 크게 앞서가는 기술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실제로 애플 경영진은 챗GPT를 접한 후 “시리는 마치 골동품 같다”라며 부랴부랴 전사적으로 생성형 AI 기술 및 서비스 개발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지지부진하던 ‘애플 카’ 프로젝트도 접고 AI에 역량을 집중했다.

사용자 기능에 초점 맞춘 AI

뒤늦게 바람에 올라탄 애플은 AI에 대하여 어떤 제품과 서비스 또는 비전을 보여줄까? 지난 6월 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에서 열린 애플 연례행사 ‘세계개발자회의’(WWDC)는 AI에 대한 애플의 답을 제시하는 자리로 주목받았다. 행사 전 애플이 오픈AI와 제휴해 챗GPT를 아이폰에서 쓰게 한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애플이 결국 AI 역량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외부 기업에 의존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WWDC에서 제시된 해법은 역시 ‘애플스럽다’고 표현해야 할 듯하다. 남들이 이미 다 하는 것들을 마치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인 양 그럴듯한 새 용어로 포장해 보여준다. 다만 하드웨어는 물론 소프트웨어(SW)·애플리케이션(앱)·운용체계(OS)까지 아우르기에 가능한 사용자 경험에 대한 완벽한 통제를 바탕으로 수준 높은 서비스와 디자인을 제시, 호화스러운 포장을 소비자가 기꺼이 받아들이도록 설득한다. 개인정보보호에 대한 강조도 빼놓지 않는다.

애플은 시종일관 AI가 아닌 ‘애플 인텔리전스’(Apple Intelligence)를 강조했다. 애플 인텔리전스는 ‘생성형 모델과 사용자 개인의 맥락을 조합해 아이폰·아이패드·맥에 유용하고 적절한 지능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애플은 설명한다. 이런 기능들은 올 하반기 정식 출시될 애플 기기 OS 새 버전인 ▲아이폰 ‘iOS 18’ ▲아이패드 OS 18 ▲맥OS ‘세쿼이아’에서 쓸 수 있다.

먼저 나온 오픈AI의 챗GPT나 구글의 제미나이 등은 학습한 데이터와 매개변수의 수나 성능 등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초거대언어모델(LLM) 자체가 하나의 독자적 AI 제품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있었다. 초거대언어모델 기반 생성형 AI가 가져온 충격, 처음 세상에 나온 기술에 대해 시장을 교육시켜야 하는 선도자의 입장 등이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사용자에게 왠지 AI라는 새로운 기능이나 서비스를 새로 도입해야 하고 배워서 써야 할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했다.

반면 애플은 AI를 철저히 자사 제품을 소비자가 편리하게 쓰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규정해 녹여냈다. 아이폰의 메일·메모 앱 등에서 글을 쓸 때 생성형 AI 모델이 글을 다듬거나 오류를 잡아주고, 대충 쓱쓱 그린 그림을 말끔하게 고쳐준다. 사용자의 프롬프트에 따라 아이폰 연락처에 저장된 친구 사진으로 맞춤형 이모지를 만들기도 한다. 아이패드 계산기 앱에서 손 글씨로 수학 문제를 쓰면 AI가 문제를 풀어준다.

이 같은 AI 기능은 시리를 접점으로 사용자와 만난다. 회의 시간이 미뤄져 저녁에 예정된 딸의 공연에 늦을 것 같을 때, 시리는 캘린더와 지도 앱을 참고해 교통편이나 이동 시간을 알려줄 수 있다. 친구가 문자로 보낸 새집 주소를 연락처에 업데이트하라고 시리에 시킬 수도 있다. 아이폰이 연락처·문자·사진·메일 등 사용자의 거의 모든 정보와 그 맥락을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애플은 외부 앱도 이런 기능을 통합해 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6월 1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 있는 애플 파크 본사에서 열린 연례 세계개발자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 발표를 듣고 있다. [사진 AFP/연합뉴스]

생성형 AI 선두 주자와 ‘밀당’

이런 정보들이 외부 서버에 저장되고 처리된다면 불안한 일이다. 그래서 애플은 대부분의 AI 작업이 기기 안에서 이뤄지도록 했다. 이른바 ‘온-디바이스 AI’(On-Device AI·서버 연결 없이 기기 자체적으로 AI 기능을 수행하는 기술)다. 애플은 30억 개의 매개변수로 학습한 소형 언어모델을 직접 만들어 돌린다. 기기 내부에서 처리가 어려운 복잡한 작업은 서버로 보내는데, 이를 위해 서버 안의 분리된 공간에서 작업을 처리하고 암호화한 데이터를 주고받는 ‘프라이빗 클라우드 컴퓨트’라는 보안 기법을 마련했다.

또 냉장고에 있는 식자재 사진을 보여주며 메뉴를 추천받는 등의 작업은 챗GPT와 연결해 답을 들을 수 있게 했다. 스스로 처리하기 어려운 문제를 접하면 시리가 “이 질의를 챗GPT에 보내도 되겠냐?”라고 묻고, 허락을 받아 처리한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생성할 때도 챗GPT를 쓸 수 있도록 했다. 오픈AI와 제휴했지만, 사실상 시리를 통해 필요한 정보만 받아오는 방식이다. 오픈AI에 예속되었다고 보기 힘들고, 도리어 앞으로 다른 AI 모델에도 문을 열며 AI 기업들을 줄 세울 가능성도 있다. 환각이나 개인정보 보호 등 골치 아픈 문제를 떠넘기는 효과도 있다.

20억 대 이상의 활성 단말기를 가진 애플의 플랫폼이 힘을 발휘한 것이다. 하드웨어·소프트웨어·단말기와 서버용 AI 반도체까지 직접 만드는 애플이 자기식으로 생성형 AI 열풍을 길들인 셈이다. 마이크로소프트·구글도 비슷한 접근을 하고 있지만, 사용자에 대한 밀착도에서 스마트폰에 비할 것은 없고, 애플은 스마트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가졌다.

애플 인텔리전스가 홍보한 대로 실제 작동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애플 기기가 모두 관련 기능을 실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AI 모델을 돌릴 성능이 되는 아이폰15 이후 기기와 M시리즈 칩을 쓰는 기기가 대상이다. 애플 인텔리전스가 호응을 얻으면 성능이 강력한 차세대 아이폰 모델 판매가 늘어날 것이다. 이에 대한 기대로 애플 주가는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진정한 AI 비서의 첫 등장일지, 또 한 번의 ‘시리 용두사미’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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